아는 것을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 정직함이 곧 참된 앎이라는 뜻입니다. 분명히 안다고 생각했던 일도 막상 설명해보라고 하면 말이 막히는 경험, 다들 한 번쯤 있으실 겁니다. 이 문장은 논어(論語) 위정편(爲政篇) 제17장에서 공자(孔子)가 제자 자로(子路)에게 건넨 말입니다. 짧은 한 문장이지만 25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모른다고 말하는 용기"라는 말로 자주 인용되는 이유를 하나씩 짚어보겠습니다.
2500년 전 스승이 건넨 말이, 오늘의 나에게도 조용히 되묻는다
차례
원문과 직역, 한눈에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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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나온 배움을 가만히 되짚어보는 순간, 앎은 비로소 내 것이 된다 |
| 원문 | 독음 | 직역 |
|---|---|---|
| 子曰:由,誨女知之乎? | 자왈, 유, 회여지지호 | 공자께서 말씀하시길, 유야, 안다는 것이 무엇인지 일러주겠다 |
| 知之爲知之,不知爲不知 | 지지위지지, 부지위부지 | 아는 것은 안다고,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말하는 것 |
| 是知也 | 시지야 | 그것이 바로 아는 것이다 |
이 구절이 실린 논어는 공자(孔子)와 제자들이 나눈 대화를 후대에 엮은 기록으로, 짧은 문답 속에 스승의 가르침이 압축되어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지지위지지도 그중 하나로, 특정 제자를 향한 구체적인 상황에서 나온 말이라는 점이 중요합니다.
자로는 왜 이 말을 들었을까
이 말을 들은 제자는 자로(子路)입니다. 본명은 유(由)이며, 공자(孔子)의 제자 중에서도 용맹하고 성격이 직선적이기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이런 성격 때문에 자로는 모르는 것도 아는 척 넘어가려는 습관이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송대 학자 주자(朱子)는 이 구절을 두고 子路好勇,蓋有强其所不知以爲知者(자로호용, 개유강기소부지이위지자)라고 풀이했습니다. 자로가 용맹함을 좋아해서 모르는 것도 억지로 아는 척했다는 뜻으로, 공자가 이를 바로잡으려고 이 말을 건넸다는 해석이 통용됩니다. 이 배경을 알고 나면 지지위지지가 그저 좋은 격언 한 줄이 아니라, 한 사람의 성격을 정확히 꿰뚫어 본 스승의 맞춤 처방이었다는 사실이 새롭게 다가옵니다. 공자가 제자마다 다른 방식으로 가르침을 건넸다는 점은 스승이자 인간으로서의 공자의 모습을 이해하는 데도 도움이 됩니다.
"女"는 여자가 아니라 "너"였다
誨女知之乎(회여지지호) 구절 속 女(여)를 처음 보면 '여자'로 오해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女(여)는 너를 뜻하는 汝(여)의 통용자(通用字, 같은 뜻으로 바꿔 쓰는 글자)입니다. 공자(孔子)가 자로(子路)를 직접 부르며 "너에게 가르쳐 주겠다"고 말하는 대목인 셈입니다. 오독하기 쉬운 지점을 아래처럼 정리했습니다.
- 오독: 誨女知之乎를 "너에게 여자(를 대하는 법)를 가르쳐 주랴?"로 읽는 경우
- 올바른 해석: 女(여)는 汝(여)와 같은 글자이므로 "너에게 안다는 것이 무엇인지 가르쳐 주랴?"로 읽는 것이 맞습니다
"이것이 아는 것이다"는 지식일까 지혜일까
마지막 구절 是知也(시지야)의 知를 두고는 해석이 갈립니다. 하나는 앞 문장의 '아는 것'을 그대로 반복해 받는다고 보는 견해로, 정직하게 인정하는 태도 자체를 다시 한번 '아는 것'이라 확인하는 구조로 읽습니다. 다른 하나는 이 知를 智(지, 지혜)의 뜻으로 넓혀 읽는 견해로, 모르는 것을 인정하는 태도 자체가 단순한 지식을 넘어 지혜에 해당한다고 보기도 합니다. 두 해석 모두 널리 소개되는 편이라, 어느 쪽이 정답이라고 단정하기보다는 두 관점을 함께 알아두는 편이 이 구절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모른다고 말하는 용기, 오늘의 우리에게
2500년 전 자로(子路)에게 건넨 이 한마디가 지금도 유효한 이유는 간단합니다. 모르는 것을 아는 척하다가 오히려 일을 그르치는 상황이 여전히 반복되기 때문입니다. 회의 자리에서, 업무 보고에서, 일상 대화에서 정직하게 "모른다"고 말하는 태도는 여전히 어렵고, 그래서 여전히 가치가 있습니다. 서양 철학에서 흔히 언급되는 소크라테스의 "무지의 지"와 표면적인 유사점이 있다고 언급되곤 하지만, 두 사상의 직접적인 연관성이 학술적으로 확인된 것은 아니므로 단순한 우연의 일치 정도로 보는 편이 무난합니다.
모른다고 말하기가 유독 어려운 상황은 대체로 비슷합니다.
- 상사나 손윗사람 앞에서 체면이 깎일까 걱정될 때
- 후배나 부하 직원 앞에서 권위가 흔들릴까 염려될 때
- 온라인에서 익명으로 의견을 주고받다 자존심 때문에 물러서기 어려울 때
이럴 때일수록 지지위지지가 건네는 메시지는 간단합니다. 모른다고 인정하는 순간이 부끄러운 순간이 아니라, 오히려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 출발점이라는 것입니다.
궁금한 점 더 짚어보기
Q. "女"는 정말 "여자"가 아니라 "너"라는 뜻인가요?
A. 女(여)는 너를 뜻하는 汝(여)의 통용자로, 공자(孔子)가 자로(子路)를 직접 부르는 대목이라 "너"로 보는 것이 통설입니다.
Q. 이 구절은 논어 몇 장에 실려 있나요?
A. 논어(論語) 위정편(爲政篇) 제17장에 실려 있습니다.
Q. 마지막 "시지야(是知也)"의 지(知)는 지혜(智)와 같은 뜻인가요?
A. 학설이 갈립니다. 앞 문장의 '아는 것'을 그대로 반복한다고 보는 견해와, 智(지, 지혜)로 확장해 읽는 견해가 함께 소개되고 있습니다.
Q. 소크라테스의 "무지의 지"와 같은 말인가요?
A. 표면적인 유사점이 언급되곤 하지만, 두 사상이 직접적으로 연관되어 있다고 학술적으로 입증된 것은 아니라서 같은 말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습니다.
정리
지지위지지(知之爲知之)의 핵심은 결국 하나입니다.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을 정직하게 구분하는 태도가 곧 참된 앎이라는 것입니다. 용맹함이 앞섰던 자로(子路)에게 공자(孔子)가 건넨 이 짧은 당부는, 체면을 지키려 아는 척하기 쉬운 오늘날의 우리에게도 여전히 유효한 조언으로 남아 있습니다. 같은 위정편(爲政篇)에 실린 학이불사즉망 역시 배움의 태도를 다루고 있어 함께 읽어보시면 좋습니다. 여러분은 논어(論語)의 어떤 구절이 가장 마음에 남으시나요? 댓글로 편하게 이야기 나눠주시면 좋겠습니다.
원문 전체는 위키문헌 논어언해 위정편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이 글은 생성형 AI의 도움을 받아 작성되었으며, AI 기본법에 따라 이를 고지합니다. 혹시 원문 표기나 해석에서 잘못된 정보를 발견하시면 댓글로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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