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욕립이립인(己欲立而立人)은 "내가 서고 싶으면 남부터 세워주라"는 공자(孔子)의 적극적인 배려법입니다. 정작 내 앞가림도 벅찬데 남까지 챙기라니, 선뜻 고개가 끄덕여지지는 않습니다. 자공(子貢)이 "백성에게 널리 베풀고 뭇사람을 구제하면 인(仁)이라 할 수 있습니까"라고 묻자, 공자는 그것은 인을 넘어 요(堯)임금과 순(舜)임금조차 부족하게 여긴 성(聖)의 경지라 답하며 이 구절을 인을 실천하는 현실적인 방법으로 제시했습니다. 이 문장은 논어(論語) 옹야편(雍也篇) 마지막 장에 나오며, 뒤이은 능근취비(能近取譬) — 내 처지를 미루어 남의 처지를 헤아린다는 뜻 — 가 실천 원리를 한 문장으로 요약합니다.
먼저 선 사람이 손을 내밀어야, 다음 사람도 설 수 있다
차례
기욕립이립인, 원문은 무엇을 말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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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먼저 선 사람이 손을 내밀어야, 다음 사람도 설 수 있다 |
夫仁者, 己欲立而立人, 己欲達而達人. 能近取譬, 可謂仁之方也已(부인자, 기욕립이립인, 기욕달이달인. 능근취비, 가위인지방야이) — 무릇 인(仁)이란, 내가 서고 싶으면 남부터 세워주고 내가 통달하고 싶으면 남부터 통달하게 해주는 것이다. 가까운 내 처지에서 미루어 비유할 수 있다면, 그것이 인을 행하는 방법이다.
앞부분 기욕립이립인은 "내가 서고 싶으면 남부터 세워준다"는 뜻이고, 뒤에 이어지는 기욕달이달인은 "내가 통달하고 싶으면 남부터 통달하게 해준다"는 뜻입니다. 두 구절이 짝을 이루며 인(仁)을 실천하는 구체적인 그림을 보여줍니다.
立과 達, 한 글자 차이가 만드는 뜻의 결
立(설 립)은 두 발로 딛고 서는 것, 즉 자리를 잡고 기본을 갖추는 것을 가리킵니다. 반면 達(통달할 달)은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널리 통하고 뜻을 이루는 것을 뜻합니다. 立이 처음 자립하는 단계라면, 達은 그 자립을 발판 삼아 더 멀리 나아가는 단계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기욕립이립인은 상대가 아직 서 있지 못할 때 먼저 발 디딜 곳을 마련해주는 일이고, 기욕달이달인은 이미 선 사람이 더 넓은 곳으로 나아가도록 돕는 일이라 볼 수 있습니다. 한 글자 차이지만 돕는 방식은 이렇게 결이 다릅니다.
자공의 질문과 요순도 부족하게 여겼다는 대목
이 구절은 원래 홀로 나온 말이 아니라, 자공(子貢)의 질문에 대한 답으로 나온 말입니다. 대화는 이렇게 시작됩니다.
子貢曰: 如有博施於民, 而能濟衆, 何如? 可謂仁乎? 子曰: 何事於仁, 必也聖乎! 堯舜其猶病諸(자공왈: 여유박시어민, 이능제중, 하여? 가위인호? 자왈: 하사어인, 필야성호! 요순기유병저)! — 자공이 말하기를, 만약 백성에게 널리 베풀고 뭇사람을 구제할 수 있다면 어떻습니까, 인이라 할 수 있습니까. 공자가 말하기를, 그것이 어찌 인에 그치겠는가, 반드시 성(聖)의 경지일 것이다. 요(堯)임금과 순(舜)임금조차 오히려 그것을 부족하게 여겼다.
자공은 말재주와 사업 수완으로 이름난 제자였습니다. 그런 그가 "온 백성을 널리 구제하는 것"이라는 아주 큰 그림을 던졌는데, 공자는 뜻밖에도 그건 인(仁)이 아니라 그보다 더 높은 성(聖)의 경지라고 답합니다. 전설 속 성군(聖君)으로 꼽히는 요순도 다 이루지 못해 오히려 부족하다 여겼을 정도라는 것입니다.
이 큰 답 뒤에 공자는 눈높이를 낮춥니다. 온 백성을 구제하는 거창한 목표 대신, 내가 서고 싶은 만큼 옆 사람부터 세워주라는 기욕립이립인을 인의 실천법으로 제시한 것입니다. 이 대목이 옹야편의 몇 번째 장인지는 판본에 따라 28장 또는 30장으로 다르게 표기되기도 하는데, 어느 쪽이든 옹야편 맨 끝에 놓인 장이라는 점은 같습니다.
기소불욕물시어인과 무엇이 다른가
논어에는 기욕립이립인과 자주 비교되는 또 다른 구절이 있습니다. 바로 기소불욕물시어인, "내가 하고 싶지 않은 일은 남에게도 시키지 말라"는 구절입니다. 겉으로는 비슷해 보이지만 방향은 정반대에 가깝습니다.
기욕립이립인이 "이렇게 해주라"는 적극적인 권유라면, 기소불욕물시어인은 "이렇게는 하지 말라"는 절제에 가까운 당부입니다. 흔히 앞쪽을 서양의 적극적인 배려로, 뒤쪽을 동양의 소극적인 배려로 나누어 설명하기도 하는데, 실제로는 공자가 두 말을 다 했다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 원문 | 의미 | 등장 편 |
|---|---|---|
| 己欲立而立人 (기욕립이립인) | 내가 서고 싶으면 남부터 세워준다 (적극적) | 옹야편(雍也篇) |
| 己所不欲勿施於人 (기소불욕물시어인) | 내가 싫은 일은 남에게 시키지 않는다 (소극적) | 안연편(顔淵篇)·위령공편(衛靈公篇) |
눈여겨볼 점은 논어에 실린 순서입니다. 적극적인 버전인 기욕립이립인은 옹야편, 즉 여섯 번째 편에 나오고, 소극적인 버전인 기소불욕물시어인은 안연편(顔淵篇)과 위령공편(衛靈公篇), 즉 열두 번째와 열다섯 번째 편에 나옵니다. 편성 순서만 보면 적극적으로 베풀라는 말이 먼저, 함부로 하지 말라는 말이 그 뒤에 나오는 셈입니다.
후대 학자들 사이에서는 정자(程子)의 주석 전통을 비롯해 두 구절을 각각 인(仁)의 적극적인 면과 소극적인 면으로 나누어 설명하는 해석이 통용되어 왔습니다. 서양에서 말하는 황금률과도 종종 비교되지만, 공자는 이미 두 방향 모두를 스스로 남긴 셈이라는 점에서 단순 비교보다는 나란히 놓고 읽어보는 편이 더 나을 수 있습니다.
오늘 이렇게 적용해보면
기욕립이립인은 옛말이지만, 사람을 이끄는 자리에 있다면 지금도 그대로 쓸 수 있는 지침입니다. 立과 達의 구분을 따라 단계별로 적용해보면 이렇습니다.
- 아직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사람에게 먼저 말할 자리를 마련해주기 — 立 단계
- 이미 자리를 잡은 사람이 더 큰 성과를 낼 수 있도록 기회와 이름을 나눠주기 — 達 단계
- 내 기준이 아니라 상대의 처지에서 먼저 헤아려보기 — 능근취비의 태도
- 거창한 목표보다 지금 옆에 있는 사람 한 명부터 세워주는 것에서 시작하기
공자가 자공에게 온 백성을 구제하는 큰 그림 대신 가까운 곳부터 챙기라고 답했던 것처럼, 리더십도 거창한 선언보다 눈앞의 한 사람을 세워주는 데서 출발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자세는 앞서 다룬 선지노지가 말하는 리더의 자격과도 맞닿아 있습니다.
궁금한 점 더 짚어보기
Q. 기욕립이립인은 논어 어디에 나오나요?
A. 논어(論語) 옹야편(雍也篇) 마지막 장에 나옵니다. 자공(子貢)이 백성을 널리 구제하는 일이 인(仁)이냐고 묻자, 공자가 그것은 성(聖)의 경지라 답한 뒤 이어서 제시한 구절입니다.
Q. 기소불욕물시어인과 기욕립이립인은 뭐가 다른가요?
A. 기욕립이립인(己欲立而立人)은 "이렇게 해주라"는 적극적인 권유이고, 기소불욕물시어인(己所不欲勿施於人)은 "이렇게는 하지 말라"는 절제에 가까운 당부입니다. 방향은 다르지만 둘 다 공자가 남긴 말입니다.
Q. 立과 達은 같은 뜻 아닌가요?
A. 비슷해 보이지만 결이 다릅니다. 立(설 립)은 자리를 잡고 기본을 갖추는 것, 達(통달할 달)은 거기서 더 나아가 뜻을 널리 이루는 것을 가리킵니다.
Q. 서양의 황금률과 같은 말인가요?
A. 비슷한 취지로 비교되기도 하지만 같은 말이라 단정하기는 어렵습니다. 공자는 적극적인 기욕립이립인과 소극적인 기소불욕물시어인을 모두 남겼다는 점에서, 어느 한쪽만 떼어 비교하기보다 둘을 함께 놓고 보는 편이 더 정확합니다.
정리
기욕립이립인은 온 백성을 구제하겠다는 거창한 다짐이 아니라, 내가 서고 싶은 만큼 옆 사람부터 세워주라는 작은 실천에서 출발합니다. 자공의 거창한 질문에 공자가 굳이 눈높이를 낮춰 답한 것도, 결국 사람을 이끄는 일은 가까운 곳에서부터 시작된다는 뜻이었을 것입니다.
먼저 선 사람이 손을 내밀어야, 뒷사람도 마침내 두 발로 섭니다. 기욕립이립인은 결국 내가 딛고 선 그 자리를 조금씩 넓혀 함께 서자는 이야기였는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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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생성형 AI의 도움을 받아 작성되었으며, AI 기본법에 따라 이를 고지합니다. 혹시 원문 표기나 해석에서 잘못된 정보를 발견하시면 댓글로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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