述而不作(술이부작)은 공자가 옛것을 전할 뿐 새로 짓지 않는다고 밝힌 자기 규정입니다. 창작(作)보다 전달(述)을 앞세운 겸손의 태도로, 옛것을 믿고 좋아한다는 뒷구절인 信而好古(신이호고)와 한 문장으로 이어집니다. 그런데 정작 공자는 춘추(春秋)를 "지었다"고 알려져 있어, 처음 접하면 앞뒤가 안 맞는다는 생각부터 듭니다. 이 모순처럼 보이는 지점이 이 글에서 풀어볼 핵심 소재입니다.
옛것이 끊기지 않고, 그대로 오늘로 펼쳐진다
차례
술이부작, 무슨 뜻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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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옛것이 끊기지 않고, 그대로 오늘로 펼쳐진다 |
子曰: 述而不作, 信而好古, 竊比於我老彭.(자왈: 술이부작, 신이호고, 절비어아노팽)
공자께서 말씀하시길, 옛것을 전할 뿐 새로 짓지 않으며 옛것을 믿고 좋아하니 슬며시 나를 노팽(老彭)에게 견주어본다는 뜻입니다. 述(술)은 이미 있던 것을 옮겨 전한다는 뜻이고, 作(작)은 이전에 없던 것을 처음 만들어낸다는 뜻입니다.
송(宋)나라 학자 주희(朱熹)는 논어집주(論語集注)에서 이 구절을 풀이하며, 述(술)은 옛것을 그대로 전하는 데 그치는 것이고 作(작)은 처음으로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구분했습니다. 그러면서 作(작)은 오직 성인만이 할 수 있는 일이지만, 述(술)은 현명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해낼 수 있는 일이라고 덧붙였습니다.
| 구분 | 述(술) | 作(작) |
|---|---|---|
| 뜻 | 옛것을 전하다 | 처음으로 짓다 |
| 누가 할 수 있는가 | 현자도 가능 | 성인만 가능 |
| 술이부작에서의 역할 | 공자가 스스로 택한 자리 | 공자가 낮춘 자리 |
논어 원문 전체는 위키문헌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논어 술이편 원문 보기
노팽(老彭)은 누구일까
노팽(老彭)은 상(商)나라의 현자로, 옛것을 전하기를 좋아한 인물로 보는 설이 유력합니다. 공자가 자신을 노팽에게 슬며시 견주어본다고 말한 것도, 그런 태도를 본받고 싶다는 뜻으로 읽힙니다. 다만 노팽을 팽조(彭祖) 한 사람으로 보거나, 노자(老子)와 팽조(彭祖) 두 사람을 함께 가리키는 것으로 보는 이설도 있습니다.
그런데 공자는 왜 춘추를 지었을까
술이부작을 그대로 받아들이면 한 가지 걸리는 대목이 있습니다. 맹자(孟子) 등문공하편(滕文公下篇)에는 孔子懼, 作《春秋》(공자구, 작춘추)라는 구절이 있는데, 공자가 두려워하여 춘추(春秋)를 지었다는 뜻입니다. 述(술)이 아니라 분명히 作(작), 즉 짓다라는 글자를 쓰고 있습니다.
게다가 춘추가 완성되자 亂臣賊子懼(난신적자구), 곧 어지러운 신하와 불효한 자식들이 두려워했다는 유명한 평가까지 뒤따릅니다. 옛것을 전할 뿐 짓지 않는다던 사람이 정작 새 책을 지었고, 그 책이 세상을 흔들었다는 이야기이니 언뜻 앞뒤가 맞지 않아 보입니다.
이 모순을 주희(朱熹)도 논어집주(論語集注)에서 정면으로 다뤘습니다. 시경(詩經)과 서경(書經)을 추리고, 예(禮)와 악(樂)을 정리하고, 주역(周易)의 뜻을 풀이하고, 춘추(春秋)를 지은 일 모두 선왕(先王)들이 남긴 옛것을 전한 것일 뿐 새로 창작한 게 아니라고 해명한 것입니다. 겉보기엔 새 책을 짓는 작업 같아도, 공자 스스로는 옛 뜻을 정리해 후대에 전하는 일이라고 여겼다는 뜻입니다.
술이부작은 어떻게 이어졌을까
술이부작의 태도는 공자 한 사람에서 그치지 않고, 후대 역사 서술에도 흔적을 남겼습니다. 고려(高麗)의 김부식(金富軾)이 1145년에 펴낸 삼국사기(三國史記)가 대표적으로 꼽힙니다.
삼국사기는 중국 전통 역사학의 술이부작(述而不作)식 객관적 서술 자세를 이 땅에 뿌리내리게 했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사실을 있는 그대로 기록하고 함부로 새로 지어내지 않으려 한 태도가 이 책에도 이어졌다고 보는 것입니다. 다만 이 평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지적도 있는데, 이 부분은 아래 자주 묻는 질문에서 조금 더 짚어보겠습니다.
술이부작을 오늘 이렇게 적용해보면
옛것을 믿고 좋아한다는 信而好古(신이호고)의 태도는, 옛것을 다시 익혀 새 이치를 깨닫는다는 온고이지신과도 자연스럽게 맞닿아 있습니다. 옛것을 존중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거기서 새로운 이해를 끌어내는 태도까지 이어진다는 점에서, 두 구절은 한 뿌리에서 나온 셈입니다.
- 어떤 자료를 다룰 때 원출처를 찾아보고 함께 밝히는 습관 들이기
- 누군가의 생각을 정리해 전달할 때, 자기 생각처럼 포장하지 않기
- 완전히 새로운 것을 만들어야 한다는 부담보다, 잘 전하는 일의 가치를 먼저 인정하기
옛것을 존중하면서도 그 안에 자기 목소리를 담아내야 했던 공자의 고민은, 오늘날 창작과 편집의 경계를 묻는 논의와도 어딘가 맞닿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궁금한 점 더 짚어보기
Q. 술이부작은 논어 어느 편, 몇 장에 나오는 구절인가요?
A. 술이편(述而篇) 1장(7-1)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子曰: 述而不作, 信而好古, 竊比於我老彭.(자왈: 술이부작, 신이호고, 절비어아노팽)"이라는 한 문장 전체가 이 장에 해당합니다.
Q. 술이부작이 창작 자체를 부정하는 뜻인가요?
A. 아닙니다. 述(술)은 옛것을 전하는 것, 作(작)은 새로 짓는 것을 가리키는 구분일 뿐, 창작을 무조건 낮춰보는 말이 아니라 공자 스스로를 낮춘 겸손한 자기규정에 가깝습니다.
Q. 삼국사기는 술이부작을 완전히 그대로 따랐나요?
A. 완전히 그대로는 아닙니다. 삼국사기에는 31칙에 이르는 논찬(論贊, 편찬자의 평)이 실려 있어, 김부식(金富軾) 자신의 견해도 함께 남겼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Q. 오늘날의 창작·저작권 논의와도 연결 지을 수 있나요?
A. 학술적으로 명확히 확인된 연결은 아니지만, 옛것을 존중하면서도 자기 목소리를 담아야 했던 공자의 태도가 오늘날 창작과 편집의 경계를 묻는 논의와 맞닿아 있다는 생각을 해볼 수는 있습니다.
정리
述而不作(술이부작)은 창작을 부정하는 말이 아니라, 옛것을 전하는 일에 스스로를 낮춘 자리를 두는 태도였습니다. 춘추(春秋)를 지었다는 사실과 부딪히는 듯 보여도, 주희(朱熹)는 그 작업조차 선왕의 뜻을 전한 것일 뿐이라고 풀이했습니다.
슬며시 자신을 노팽(老彭)에게 견주어본다는 그 한마디에는, 옛것 앞에서 스스로를 낮추려 한 마음이 오래도록 담겨 있습니다.
옛것을 배우다가 문득 자기 것처럼 말하고 싶어졌던 순간이 있었다면, 댓글에 남겨주시면 반갑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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